기고 및 법률자료

봉이 김선달과 특허청

봉이 김선달은 대동강 물을 한양의 사대부집에 길어다 주는 물장수들에게 엽전 몇 닢을 나누어 주면서 물을 지고 갈 때마다 그에게 한 닢씩 던져주도록 하였다. 이튿날 선달은 의관을 정제하고 평양성 동문을 지나는 길목에서 의젓하게 앉아서 물장수들이 던져주는 엽전을 헛기침을 하면서 점잖게 받고 있었다. 이때 엽전을 내지 못한 물장수가 선달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는다. 이를 본 한양상인들은 대동강물이 선달 것인데 물장수들이 물값을 내지 못하게 되자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여 내일부터는 밀린 물 값까지 다 지불하여야 한다고 엽전준비에 야단이었다. 참다못한 한양상인들은 아예 대동강 물을 사려고 선달과 흥정을 시작하였다. 선달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것이므로 조상님께 면목이 없어 못 팔겠다고 버티는 척 하면서 결국 당시 황소 60 마리값에 해당하는 거액에 대동강 물을 팔아먹는다.

특허를 받기 위해서는 특허 받고자 하는 발명을 상세하게 설명한 특허명세서를 특허청에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특허명세서에는 하나의 발명이라 할지라도 보호받고자 하는 사항들을 항별로 나누어 기재해야 한다. 항별로 나누어서 기재한 것을 청구항이라 하는데, 이 청구항은 보통 수개 내지는 수십개 때로는 수백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청구항은 특허발명을 올바로 보호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으로, 변리사는 청구항을 신중하게 작성해야 하고, 특허청의 심사관 또한 항별로 신중하게 심사를 해야 한다. 청구항별로 특허의 가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청구항 수에 따라 심사료도 납부해야 한다. 청구항별로 심사를 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청구항 수에 비례하여 심사료를 납부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거의 전세계 특허청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특허가 등록된 후에도 특허권자는 소정의 매년 연차료를 납부해야 하는데, 문제는 연차료를 청구항 수에 비례하여 내야한다는 점이다. 특허가 등록된 후에 소정의 연차료를 낸다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거의 공통적인 일이지만, 그렇다고 연차료를 청구항 수에 비례하여 내도록 하는 나라는 없다. 아니 이 지구상에 두 나라가 있다. 일본과 대한민국이다. 일본이 우리를 따라 하지는 않은 것 같고, 우리가 일본을 따라 한 것이다.

심사료를 청구항 수에 따라 내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지만, 특허가 등록되고 나서 매년 납부하는 연차료를 청구항 수에 따라 내도록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특허가 등록되고 나면, 특허청은 그 특허에 대하여 더 이상 하는 일이 없다. 청구항이 많다고 해서 심사관의 인력이 더 드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은 특허가 일단 등록되면 청구항 수에 관계없이 모두 똑같은 연차료를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오직 일본이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우리가 그것을 모방하고 있다. 현행기준으로 특허등록후 10년째의 연차료를 살펴보면, 청구항이 5개인 경우 약 50만원, 청구항이 10개이면 약 80만원, 청구항이 20개이면 약 135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연차료는 또 해가 갈수록 증가한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우리는 청구항을 많이 작성할 수 없다. 연차료가 무서워 청구항 수를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실한 특허, 부실한 권리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나라 특허명세서의 품질이 아직까지 전세계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특허받아 봐야 말짱 도로묵’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나오는 데는 우리의 잘못된 연차료 체계가 한몫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연차료가 왜 청구항 수에 비례하여 납부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청구항 수가 제대로 작성되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하여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대동강물이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선달의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았던 한양상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대동강물이 이미 오래전에 자유롭게 되었듯이 우리의 특허 연차료도 이제 그런 날이 오길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