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성과 진보성은 특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특허요건이다. 특허를 받기 위한 요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신규성과 진보성이야말로 특허의 생명이라 할 만큼 중요한 특허요건이다. 신규성과 진보성이 없으면 특허를 받을 수 없고, 특허를 받았다 하더라도 무효로 될 수 있다. 따라서 신규성과 진보성에 대한 판단은 특허업무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도 신규성과 진보성 판단을 잘못하여 잘못된 심결이나 판결이 나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 신규성과 진보성의 차이를 명확히 살펴보고자 한다.
신규성과 진보성은 다같이 특허요건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판단대상이 이미 공지된 자료(선행기술)라는 점이다. 이처럼 신규성과 진보성은 전혀 별개의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신규성은 단일 문헌(single source document)에 의하여 판단하지만, 진보성은 단일 문헌 뿐만 아니라 둘 이상의 복수의 문헌에 의하여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구성요소 (가)와 (나)로 이루어진 발명의 신규성을 판단하면서, D1에 (가)가 개시되고, D2에 (나)가 개시되어, D1과 D2에 의하여 신규성이 상실되었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신규성을 잘못 판단한 것이다. D1에 (가)와 (나)가 모두 개시된 경우에만, D1에 의하여 신규성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D1에도 (가)와 (나)가 개시되고, D2에도 (가)와 (나)가 개시되었다면, 그 발명은 D1에 의해서도 신규성이 없고, D2에 의해서도 신규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신규성은 판단대상의 기술분야가 모든 기술분야를 망라하지만, 진보성은 그 발명이 속하는 기술분야에 한한다. 신규성은 선행기술과의 동일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분야를 제한하지 않는다. 기술분야가 다른데 어떻게 동일할 수 있느냐라는 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예를 들어, 휴대폰에 사용되도록 개발된 어떤 합성수지 필름이 이미 신발 밑창에 사용되어 왔던 필름이라면, 휴대폰용 필름은 신발용 필름에 의해 신규성을 상실한다. 신발과 휴대폰은 기술분야가 전혀 다르다. 그러나 이 경우, 신발용 필름은 휴대폰용 필름에 대한 진보성 판단대상이 될 수 없다. 신규성과 진보성의 판단대상을 이해하지 못하여 잘못 판단한 사건이 ‘캐논 사건’이다. 캐논의 ‘프린터용 감광드럼’에 대한 진보성을 판단함에 있어서 ‘광산용 드릴장치’를 진보성 판단자료로 삼았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진보성은 발명이 속한 그 기술분야에 한정된다. 아니면 조금 융통성을 발휘하여 그 기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아주 유사한 기술분야에 한정된다. 진보성은 ‘이것(해당발명)이 저것(선행기술)보다 우수한지(진보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우열을 가리기 위해서는 동종의 사물이어야 한다. 신발이 휴대폰보다 우수하다고 말하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신발이 저 신발보다 우수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진보성 판단대상의 기술분야가 동일해야 한다는 것은 이러한 논리에서 출발한다. 다른 예로, 동일한 수학시험에서 90점을 받은 학생이 70점을 받은 학생보다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영어를 90점 받은 학생이 수학을 70점 받은 학생보다 우수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전공을 선택하여 우열을 가리는 변리사 2차 시험이 얼마나 엉터리 같은 시험인지를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신규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발명의 구성만을 판단하지만, 진보성은 발명의 목적, 구성, 효과를 판단한다. 신규성은 동일성을 판단하기 때문에 구성만을 판단하면 된다. 그리고, 기술분야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목적이나 효과를 판단할 수 없다. 신발용 필름의 효과와 휴대폰용 필름의 효과를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신규성을 판단하면서 발명의 목적과 효과를 거론하였다면 그 신규성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실제로 ‘캐논 사건’의 심결과 판결에서 일어났다.
넷째, 진보성은 당업자의 수준에서 판단하지만, 신규성은 당업자의 수준에서 판단하지 않는다. 진보성은 (당업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업자 수준을 갖는다는 가설 하에서 판단한다. 그래서 진보성 판단을 가설적 판단이라 한다. 그러나 신규성은 그런 가설이 필요없다. 신규성은 그 기술분야에서 평균적인 기술수준에 도달한 당업자가 아니라 그 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상식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판단할 수 있다. 신규성은 두 기술을 비교해서 동일한지의 여부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신규성 판단에는 2차적 고려사항(보조증거)(secondary considerations)이 사용될 수 없지만, 진보성 판단에는 2차적 고려사항이 사용될 수 있다. 진보성 판단을 위한 2차적 고려사항이란 상업적 성공(commercial success), 소비자의 욕구(long-felt-but-unfulfilled-need), 발명의 개발과정(development history), 복제품의 등장(copying) 등이 있다. 진보성 판단을 위한 2차적 고려사항은 객관적 증거이지만 항상 인용될 수 있는 강력한 증거는 아니다. 그렇다고 진보성 판단에 고려해볼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 외에도, 신규성과 진보성의 차이점은 많이 있지만, 이 정도만이라도 정확히 알고 있다면, 국내 5개 중소업체를 파산지경에 이르게 했던 ‘캐논 사건’과 같은 잘못된 판결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