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요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규성과 진보성이다. 특허여부를 결정하는 심사 과정이나 특허무효심판에서 매우 중요한 요건으로, 모든 특허요건 중에서 이 두 요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95% 이상이 될 것이다. 그 중에서 신규성은 진보성보다 판단이 용이하고 관련 사건도 대략 5% 미만이지만, 진보성은 그 판단도 어렵고 관련 사건도 대략 95% 이상으로 특허요건의 심사에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진보성 요건은 발명이 속하는 기술분야에서 보통의 지식을 가진 자가 용이하게 개발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진보성이 없다고 결론짓는 것이다. 전세계의 모든 특허법이 진보성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지식을 많이 가져서도 안되고 적게 가져서도 안되며 보통의 지식을 가진 자가 판단해야 한다. 지극히 추상적인 규정처럼 보이고, 따라서 진보성 판단은 주관적 판단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진보성 판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떤 법이 추상적인 규정에 의하여 주관적으로 판단하도록 만들어졌다면 그 법은 잘못된 것이다. 주관적 판단은 법을 해석함에 있어서 올바른 판단방법이 아니다. 진보성 판단은 아주 구체적인 것이며 객관적인 것이다.
진보성 판단은 3단계 판단방법(Three Step Test)에 의해 행해진다. 첫째, 선행기술의 범위를 확정하고, 둘째, 선행기술과 해당발명의 차이점을 분석하여 진보성의 유무를 판단하고, 셋째, 두 번째 단계에서 진보성을 판단하는 자가 당업자의 기술수준을 파악하여 당업자라는 가정 하에서 진보성을 판단한다.
우선, 첫 번째 단계인 선행기술의 범위를 파악하는 단계는 그 범위를 해당발명의 해당(pertinent) 기술분야에 한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금 더 확장한다면, 해당발명과 유사한(analogous) 기술분야까지 확장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심사 실무에서는 선행기술의 범위를 파악하는 단계부터 잘못된 경우가 무수히 많다. 해당 또는 유사 기술분야가 아닌데도 진보성 증거로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잘못된 심사는 진보성과 신규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규성은 선행기술의 범위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모든 기술분야를 망라하지만, 진보성은 해당 기술분야 아니면 유사 기술분야에 한정된다. 또한 신규성은 동일성을 판단하기 때문에 판단에 융통성이 없지만(narrow), 진보성은 용이창작의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상당한 융통성이 있다(broad). 이러한 기본 법리를 이해하면 진보성 판단을 위한 선행기술의 범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진보성 판단에서 가장 중요하다. 우선 선행기술과 해당발명의 차이점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 차이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발명의 목적, 구성, 및 효과를 파악해야 한다. 물론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명의 구성이다. 발명의 구성이 다르다면, 목적이나 효과도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발명의 진보성이 부인되지 않는다. 또한 목적이나 효과가 다르다면, 구성도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 경우도 진보성이 부인되기 어렵다. 목적이나 효과가 다른데 구성이 동일하다면, 그것은 신규성 문제일 가능성이 높고 진보성 문제일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그런데 우리의 심사, 심판, 및 소송 실무에서는 이 단계에서 결정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다.
우리 실무는 발명의 차이점을 파악함에 있어서, 발명을 구성요소(1, 2, 3, 4 등으로)로 분해한다. 그리고 그 구성요소별로 선행기술의 구성요소와 대비한다. 마치 청구항을 기계적으로 분해하듯이 구성요소로 분해한다. 발명의 차이점을 이렇게 구성요소별로 분해하여 진보성을 판단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발명을 구성요소로 대비하여 진보성을 기계적으로 판단한 심결이나 판결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 이러한 판단방법은 나무만을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진보성의 판단은 발명의 목적, 구성, 및 효과를 파악하여 기술적 특징들(technical features)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지, 모래알과 같은 구성요소를 대비하여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구성요소들이 선행기술에 모두 개시된 경우의 진보성 판단은 반드시 발명의 효과에 대한 파악이 수반되어야 한다. 공지된 구성요소들의 조합에 의하여 다른(different) 또는 예측하지 못한(unexpected)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 발명의 진보성은 부인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상승효과(synergistic result) 또는 상승작용(synergism)을 파악해야 한다. 상승효과가 인정되면, 설사 모든 구성요소들이 복수의 선행기술에 개시되었다 하더라도, 진보성이 부인되지 않는다. 이 경우, 상승효과가 없다고 해서 반드시 진보성이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진보성 판단의 올바른 법리다. 상승효과를 판단하지도 않고 공지된 구성요소들의 조합이라는 이유로 당업자가 용이하게 개발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우리의 실무는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의 특허실무는 상당히 많은 발명들을 진보성으로부터 배제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당업자의 기술수준을 파악하여 판단하는 자가 그 기술분야의 당업자라는 가정 하에서 진보성을 판단한다. 해당 기술분야를 공부한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는데, 해당 기술분야의 보통의 전문지식을 가진 자라고 생각하고 진보성을 판단하라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때로는 심판이나 소송 과정에서 통상의 기술자가 누구인지, 그가 가지고 있는 기술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거나 그에 대한 증거를 제출하라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진다. 당업자의 기술수준은 발명의 목적, 구성, 및 효과를 파악하여 그 발명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게 될 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진보성을 판단하면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보다 객관적으로 진보성을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려운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 바로 2차적 고려사항(보조증거)(secondary considerations)이다. 2차적 고려사항이란 상업적 성공(commercial success), 소비자의 욕구(long-felt-but-unfulfilled-need), 발명의 개발과정(development history), 복제품의 등장(copying) 등이 있다. 2차적 고려사항은 객관적 증거이지만 항상 인용될 수 있는 강력한 증거는 아니다. 하지만, 진보성 판단을 보다 객관적으로 하기 위해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물론 신규성 판단에는 2차적 고려사항이 절대로 사용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