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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심판 및 소송] 특허심판원 정체성의 위기

특허법원에서의 심결취소소송은 특허심판원 심결의 적법성을 판단하는 재판이다. 심결취소소송은 특허심판원 심결에 대하여 불복하고자 하는 자가 청구하는 소송으로, 특허심판원에서 판단한 사항이 타당하지 않으니 특허법원에서 다시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심결은 기재불비와 같은 기재요건에 관한 쟁점도 있지만, 특허요건에 관한 쟁점이 대부분이며, 그중에서도 신규성과 진보성에 관한 사항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여기서 설명하는 내용들은 신규성과 진보성을 쟁점으로 하는 사건들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특허법원은 심판 단계에서 제출되지 않은 증거를 채택하여 심리해오고 있다. 특허법원의 이러한 심리관행은 심결취소소송의 취지에도 맞지 않으며, 특허심판원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출원발명이 신규성이나 진보성을 상실하어 특허를 받지 못하거나, 이미 특허받은 발명이 같은 이유로 무효로 한다는 특허심판원 심결에 대하여, 심판 단계에서 제출되지 않은 증거를 특허법원 소송 단계에서 제출하여 신규성이나 진보성 상실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재판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특허발명이 무효심판 단계에서 선행기술 A에 의하여 신규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무효로 되지 않았다고 하자. 현행의 재판심리 관행으로 보면, 이 경우 패소자는 특허법원에 심판 단계에서 제출되지 않았던 선행기술 B를 증거로 제출하면서 심결취소를 구할 수 있고, 특허법원은 선행기술 B로써 무효여부를 판단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관행에서는 많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심결취소소송은 심결의 적법성을 심리하는 소송이다. 하지만 특허법원에서 새로운 증거에 대하여 독자적으로 심리하는 것은 심결의 적법성을 심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증거에 대하여 독자적으로 신규성이나 진보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둘째, 특허법원에서 새로운 증거에 대하여 독자적으로 심리하는 것은 1회의 사실심만을 거치게 되어, 헌법에서 보장하는 3심제에도 위배된다. 특허발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특허청(특허심판원)에서 1심을 거치도록 하고 2심은 사법부인 법원에서 심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특허심판 및 소송제도인데, 특허심판원에서 판단하지 않은 증거에 대하여 특허법원이 판단하는 것은 3심제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셋째, 심판 단계에서 제출되지 않았던 증거를 바탕으로 특허법원이 독자적으로 특허요건을 판단한다면, 심판을 거치지 않고 특허법원에 직접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무효심판을 제기하고자 할 때, 특허심판원의 심판을 거치지 않고 특허법원에 직접 1심에 해당하는 무효소송 제기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렇게 된다면 특허심판원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처럼 심판 단계에서 제출되지 않은 증거를 특허법원의 재판 단계에서 제출하여 신규성이나 진보성 상실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렇다고 새로운 증거가 심결취소소송에서 모두 인정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신규성이나 진보성을 심리한다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심판 단계에서 제출되지 않은 새로운 증거가 인정될 수도 있다. 당사자가 신규성이나 진보성을 다투면서 심결에서 판단한 신규성이나 진보성을 보조하거나 보충하기 위한 증거는, 비록 그것이 심판 단계에서 제출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인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무효심판 단계에서 선행기술 A에 의하여 신규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무효로 되지 않은 경우에, 새로운 선행기술 B를 제출하면서 신규성이 없다고 주장할 때, 선행기술 B는 증거로 채택되어서는 안되지만, 선행기술 A에 의하여 신규성이 있다고 판단한 심결의 부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그를 뒷받침하기 위한 새로운 증거 C는 얼마든지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규성이나 진보성을 판단하기 위한 비교대상으로서의 직접 증거는, 그것이 심판에서 심리되지 않았던 증거라면, 특허법원에서 채택하여 심리해서는 안된다.

특히 신규성이 쟁점인 경우에는 새로운 증거가 절대로 특허법원에서 심리되어서는 안된다. 심판 단계에서 선행기술 A가 판단의 근거가 되어 출원발명이나 특허발명의 신규성이 인정된 경우에, 상대방은 새로운 증거인 선행기술 B를 제출하여 신규성이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신규성은 단일의 문헌(single source literature)에 의하여 판단되기 때문에, 새로운 증거에 의하여 신규성을 판단하는 것은, 다른 선행기술 자료(선행기술 A)에 의한 판단에 관계없이, 처음부터 다시 신규성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증거인 선행기술 B를 소송 단계에 제출하여 심리해주기를 요구하기 전에, 특허심판원에 새로운 심판을 제기해야 한다.

진보성은 신규성과는 다르다. 진보성은 신규성과 마찬가지로 단일의 문헌에 의하여도 판단할 수 있지만, 신규성과는 다르게 2개 이상의 복수의 문헌에 의한 판단이 가능하다. 복수의 문헌에 의하여 진보성을 판단할 때, 거의 대부분의 사건에서는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증거(이하 ‘주증거’)가 하나 있다. 나머지는 주증거와 함께 보조적으로 참조되는 증거(이하 ‘보조증거’)들이다. 역시 특허법원의 소송 단계에서 새로운 증거를 주증거로 제출해서는 안된다. 보조증거는 새로운 증거라 하더라도 소송 단계에서 채택되어 심리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설명은 지극히 탁상공론에 가깝다. 실제의 경우에는, 보조증거가 진보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증거가 진보성을 판단하는 주증거인 경우에는, 특허심판원에 새로운 심판을 제기하여 특허심판원에서 심리할 수 있어야 한다.

2015년에 특허법원 제3부에서 선고한 특허 및 실용신안 등록무효사건 중에서 심판 단계에서 제출되지 아니한 선행발명을 특허법원에 새로이 제출한 사건은 모두 12건이고, 그중에서 심결이 취소된 사건은 2건이라 한다. 새로운 증거가 제출된 12건의 사건에서, 그 새로운 증거가 신규성 판단 증거인지 또는 진보성 판단증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신규성 증거이었거나 아니면 진보성 판단의 주증거이었다면, 이러한 소송관행은 앞에서 설명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